때는 661년, 신라가 당과 연합하여 백제를 멸망시키고 고구려마저 점령하기 위해 한창 통일 전쟁을 치르고 있을 때였다. 배움에 목말라 있던 신라의 승려 원효는 후배인 의상과 함께 부푼 꿈을 안고 선진 불교를 배우기 위해 당나라 유학길에 올랐다. 원효와 의상은 육로를 이용하여 당나라에 가기로 결정하고 고구려 국경선을 넘어 요동 지방까지 갔다.
그러나 두 사람은 고구려 군사들에게 붙잡혔고, 죽을 고비를 넘기고 간신히 신라 땅으로 되돌아올 수 있었다. 그래서 두 번째는 당나라까지 바닷길로 떠나기로 계획하고 서해안으로 출발하였다. 경주에서 출발하여 지금의 충청남도 천안 부근에 이르렀을 때였다. 밤은 깊어 가는데 폭우가 계속 쏟아지자 원효와 의상은 부득이하게 동굴 안에서 하룻밤을 머무르기로 결정하였다. 원효는 웅크린 자세로 새우잠을 자다가 한밤중에 갈증이 나서 마침 머리맡에 놓여 있던 물을 무심코 마셨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에 잠에서 깬 원효는 자신이 달게 마셨던 물이 사실은 해골 안에 들어 있던 썩은 물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자 갑자기 구토가 나왔다. 계속 토악질을 하다가 원효는 그 순간 깨달았다.
"해골에 담긴 물은 어젯밤이나 오늘이나 똑같거늘 어이하여 어제는 달디 단 물이었던 것이 오늘은 구역질을 나게 하는가? 그렇다! 어제와 오늘 사이에 달라진 것은 내 마음일 뿐이다. 진리는 결코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다."
원효는 그토록 원했던 깨달음을 해골 물에서 얻었다. 이제 원효에게 당나라로의 불교 유학은 무의미해졌다. 의상이 짐을 꾸리며 길을 재촉하였으나 원효는 의상에게 가지 않겠다고 무덤덤하게 말했다.
"의상 스님, 나는 당에 가지 않겠소. 일체유심조, 즉 세상의 모든 일은 마음먹기 나름이니 내가 여기에 있은들 깨우치지 못할 까닭이 무엇이겠소. 나는 이곳에 머물겠으니 스님만 다녀오시오."
결국 그곳에서 의상과 작별한 원효는 신라 땅에 남아 이곳저곳을 떠돌며 자유로운 삶을 살았다. 원효가 살았던 시대의 불교는 왕실과 귀족들이 주로 믿는 종교였다. 이러한 시기에 원효는 전국 방방곡곡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불교의 가르침을 쉽게 풀어서 전파하면서 불교의 대중화에 앞장설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