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씨'라고 하면 조선 시대 한석봉을 최고로 꼽는 사람들이 많다. 25세의 나이에 과거 시험에 합격하여 관직에 올랐고, 중국에 사신으로 왕래하면서 명필가로 이름을 떨쳤다. 왕은 벽에 항상 석봉의 글씨를 걸어 두고 감상할 정도로 좋아했으며, 석봉으로 하여금 나라의 주요 문서를 도맡아 작성하게 했다. 『석봉천자문』이라는 책을 남겨 오늘날까지 한자를 처음 배우는 사람들에게 교본이 되게 한 그의 명필 뒤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석봉은 세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떡 장사로 겨우 살림을 이어가는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서당은 고사하고 종이와 먹을 살 수도 없을 정도로 가난했던 석봉은 물을 찍어서 항아리나 돌 위에 글씨 쓰는 연습을 하였다. 이런 아들의 성공을 위해 어머니는 석봉을 유명한 절로 보내 공부를 시켰다.
절에 들어가 공부를 한 지 10년 쯤 지났을 무렵 석봉은 어머니가 매우 보고 싶었다. 참다 못해 밤에 몰래 절에서 빠져 나온 그는 집으로 달려갔다. 갑자기 나타난 아들을 보고 놀라는 어머니에게 석봉은 말했다.
"십 년 동안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이제 제가 어머니를 편히 모시겠습니다. 어머니가 뵙고 싶어서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어머니는 방 안의 호롱불을 끄고 말했다.
"나는 떡을 썰 테니 너는 글을 써라. 그래서 누구의 것이 더 고른지 한번 보자!"
말을 마친 어머니는 어둠 속에서도 빠르게 떡을 썰기 시작하였고 한석봉도 차분하게 글씨를 써 내려갔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불을 켜고 보니 어머니가 썬 떡은 크기나 두께가 모두 같았는데 석봉이 쓴 글씨는 서로 크기가 제각각이고 모양도 비뚤비뚤하였다. 십 년을 공부한 석봉이 몇 십 년간 떡을 썰어 온 어머니를 이길 턱이 없었던 것이다. 이것을 본 어머니는 석봉을 크게 꾸짖었다.
"그런 글씨를 가지고 공부를 마쳤다니 말이 되느냐? 당장 돌아가서 눈을 감고도 이 떡처럼 고르게 글씨를 쓸 수 있게 될 때까지 열심히 연습하여라. 그전에는 절대로 집에 올 생각을 하면 안 된다."
석봉은 다시 절로 돌아가 꾸준히 공부에 힘썼다. 그리고 훗날 뛰어난 명필가들의 필법을 연구하여 본인만의 글씨체를 만들어냈다. 아들을 다시 절로 보내고 혼자 눈물을 훔칠지언정 자식 앞에서는 엄격했던 석봉의 어머니. 그녀의 엄한 가르침이 석봉을 뛰어난 명필가로 만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