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이전까지 한국 화단의 주류를 이루었던 그림은 산수화였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계절의 변화를 그린 산수화는 독자적인 화풍을 구축하면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었다. 이러한 때에 자연이 아닌 사람을 그린 풍속화가 등장한 것은 매우 파격적인 일이었다. 김홍도와 신윤복은 그 변화를 주도했던 화가들이다.
김홍도와 신윤복은 사람들의 실제 생활 모습을 그렸다는 점에서 비슷하지만 살아온 인생이 다를 뿐더러 그림의 소재나 구성, 표현 방법 등에서 차이가 있다. 김홍도는 중인 집안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글과 그림을 배웠다. 어린 나이에 궁에 들어가서 왕의 사랑을 받으며 그림을 그리고 정치 생활을 했다. 한편 신윤복은 화가 집안에서 태어나 자연스럽게 화가가 되었다. 그러나 그가 어떻게 살았는지를 알 수 있는 기록이 거의 없으며 왕명에 의한 그림도 전혀 없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평범하게 살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두 화가는 화풍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김홍도는 서민들의 생활 모습과 일하는 모습을 사실적이면서도 재미있게 그리고 있다. 배경 없이 인물을 중심으로 소박하게 표현하였으며, 특히 인물은 웃음 띤 둥근 얼굴을 많이 그려 재미를 더하였다. 이와 다르게 신윤복은 그림에서 남녀 간의 애정과 낭만을 주로 다루었다. 그의 섬세한 필선과 아름다운 채색은 우아하기 이를 데 없으며 그림 안에 곁들인 짧은 시도 이러한 분위기에 한몫하고 있다. 두 화가의 대표 작품인 <벼타작>과 <월하정인>만 보아도 화풍이 확연히 다름을 알 수 있다.
김홍도의 <벼타작>은 쌀을 수확하는 농부들의 바쁜 움직임이 그대로 표현된 작품이다. 힘 있고 간결한 필선으로 인물들의 동작을 생동감 있게 그리고 있으며, 인물의 움직임이나 표정을 각각 다르게 표현한 것에서 화가의 세심한 관찰력을 엿볼 수 있다. 화려한 색을 사용하지 않아서 소박한 느낌이 드는 것도 특징이다.
한편 신윤복의 <월하정인>은 늦은 밤, 두 남녀의 은밀한 만남을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김홍도와는 달리 인물과 배경을 아주 자세하게 묘사하였기 때문에 그의 작품은 당시 사람들이 어떤 옷을 입고 어떤 집에서 살았는지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달은 깊어 삼경인데 두 사람 마음은 둘 말고 누가 알겠는가"라고 그림 한켠에 적힌 시처럼 알 듯 말 듯한 두 남녀의 표정에서 김홍도의 그림에서와는 다른 섬세함과 부드러움을 느낄 수 있다.
풍속화는 이전까지 그림의 소재로 다루어지지 않았던 것들을 다룸으로써 소재의 폭을 넓혔다. 또 전문적인 화가나 사대부에 의해서만 그려지던 그림이 서민의 손으로 옮겨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풍속화의 새로운 경지는 김홍도와 신윤복에 의해 세워졌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 두 화가 덕분에 우리는 200여 년이 흐른 지금에도 조상들의 생활 모습을 알 수 있거니와 그들이 느꼈을 감정까지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게 된 것이다.